믿음과 사회 정의를 생각하며

홍주영/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 블로거 (중앙일보 12-22-2010)

나는 크리스천 가정에서 자라났다. 기독교인으로서 나는 내 이웃, 특히 가난하고 힘 없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돕는다는 기독교의 기본 가르침을 배웠다. 기독교 커뮤니티를 통해 나는 홈리스를 돕고, 부모를 잃은 이들을 위해 집을 짓고, 유사한 환경에 처해 있는 이들을 돕고 있다. 이러한 봉사 활동을 통해 나의 믿음은 더 굳건해졌다. 애초에 믿음과 사회 정의는 서로 분리해서 생각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날도 이민자 권익을 포함해서 다양한 사회 정의 이슈에 참여하고자 한다. 그 동기는 크리스천으로서 나의 믿음에 있다.

성경에는 이민자와 이민에 대한 수 많은 이야기가 실려있지만 특히 구약에 이러한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이 중 이민 이슈와 기독교가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일화를 가지고 이를 나누고자 한다.

창 세기 37장과 50장 사이에는 요셉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상인에게 팔아 넘겨 고향에서 내쫓는다. 그는 애굽에서 노예가 되지만 열심히 일해 주인의 인정을 받게 되어 집을 관리하는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그 모든 것도 잠시, 어느 날 요셉을 탐하던 주인의 부인에 의해 부인을 범하려 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우울한 나날을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요셉은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굳게 지켰다.

그 후 요셉은 하나님의 인도로 감옥에서 왕의 요리사들을 만나는데, 이 요리사들이 요셉이 무고하다는 것을 알아보게 된다. 요리사들이 왕에게 이를 뒤늦게 전해서 요셉은 감옥에서 풀려나고 왕에게 꿈을 해석하는 능력과 국가를 운영하는 능력을 인정 받아 애굽의 총리가 되어 한 나라를 다스리게 된다. 특히 왕이 꾼 꿈에서 풍년과 가뭄이 닥친다는 내용을 해석하고 지혜로운 대비책까지 마련하여 수만 명의 애굽 국민들을 가뭄에서 구하게 된다. 그리고 가뭄이 심해지자 식량을 구하러 몰려온 외부 지역 민족들을 구제하는 와중에 형제와 가족들과 극적으로 다시 재회하게 되어, 형제들을 용서하고 나라를 치리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이라는 한갓 유목민의 부족 출신으로 노예가 되어 애굽에 이민자로 들어온 요셉이 믿음을 지켜 높은 자리에 올라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되는 것이다.

나는 요셉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류미비 이민자인 해롤드 페난데즈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해롤드는 젊은 시절 서류미비자로서 미국에 와서 심장 전문의가 되어 수백 명의 사람들의 목숨을 살렸다. 해롤드가 이민 온 시절에는 이민법이 엄격하지 않아서 서류미비자라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해롤드가 오늘날의 미국에서 서류미비자로 살았더라면 그는 의학을 공부하지도 못하고 전문의로서 일을 시작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는 해롤드처럼 변호사, 의사, 교사, 학자가 되어 커뮤니티에 기여하고 싶어하는 재능 있는 서류미비자 학생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기회가 없어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소외 되고 착취 받곤 한다.

미국에서 살면서 이미 합법 신분을 가지고 있는 한인 이민자들은 서류미비자들을 멸시 할 것이 아니라, 서류미비자들에게서 요셉을 발견해낼 필요가 있다. 요셉의 일화에 등장하는 주인의 부인처럼 오로지 요셉을 착취 할 방법을 강구 할 것인가? 아니면 왕의 요리사처럼 약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 하심에 같이 동참 할 것인가? 요셉을 감옥에서 끌어내어 높은 자리에 세우는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다만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에게 그 역할을 맡기실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 해 보는 것은 내게 새로운 지평선을 열어 주었다. 믿음과 사회 정의에 대해 좀 더 깊이있게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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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문은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미교협)의 New Organizing Project 블로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중앙일보에 공동 게제 됩니다. (원문: A Reflection on Faith and Justice) 웹사이트 nakasec.org, 트위터 태그 #nopit 으로 함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