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또 매일, 여성의 회복력을 기립니다

2021년, 3월 31일


올해 ‘국제 여성의 달’은 축하만 하기만은 어렵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기념하고 강조해야 할 것은 보다 구체적입니다. 바로 쓰러져도 늘 다시 일어서는, 여성의 ‘회복력’입니다.

우리는 팬더믹의 두 번째 해로 접어들었습니다. 집단적 슬픔과 고립감, 트라우마를 견디고 있습니다. 우리는 중요한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고통에 가장 취약한 사람은 바로 여성과 이민자, 유색 인종이라는 점입니다.

지배적인 언어가 우리를 ‘일상적인 삶'을 살라고 밀어붙이지만, 어느 것도 일상적이지 않을 때 일상을 찾아가기 위한 노동과 각종 노력은 주로 여성에게 부과됩니다. 코로나 시대, 가족에 대한 여성의 책임감과 헌신의 강도는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여성의 일은 필수적이면서도 불안정해지고 있습니다. 학교 교육이 디지털화되며 아이 돌봄 노동이 증가했습니다. 여성의 건강과 안전은 허약해지고 불확실해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변화하는 사회와 인종 정의 운동의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이는 지난 정부가 행했던 수년간의 트라우마에 대한 집단적 반응입니다. 지난 정부는 백인 우월주의와 가부장 문화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며 여성과 유색 인종, 이민자, 기타 소외 집단을 억압적으로 공격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팬더믹 출현 이후, 아시아계와 태평양 도서국 출신을 향한 인종 차별 범죄와 폭력이 많이 증가했습니다. 그중 아시아계 여성이 범죄 타깃이 될 가능성이 두 배나 높았습니다.

속상하기는 하지만, 놀랄 일은 아닙니다. 이러한 문제는 대게 젠더 이슈와 인종 폭력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안 여성에 대한 페티시즘은 인종 차별과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오랫동안 사용돼 왔습니다. 이러한 풍조는 가부장제로부터 혜택을 받는 사람과 제국주의, 백인우월주의를 옹호해 왔고, 많은 사람들이 아시안 여성의 몸과 삶을 함부로 다룰 권한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했습니다. 한인 여성의 경우, 집단적이며 무의식적인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위안부라고 불리는 한인 여성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 일본군에게 참혹한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집단적인 수모와 모멸감 속에서도 살아남아 여전히 생존해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류 사회는 피해자의 살아있는 경험을 통해 해결책을 찾는 데 번번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감사하게도 변화는 이미 벌어지고 있다. 통합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이해한 유색 인종 여성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회복력은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류애가 관통하는 모든 것을 우선시하고, 취약계층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며, 평등한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또, 백인 우월주의와 가부장적 생각이 뿌리내린 구 시스템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커뮤니티를 돌보는 것은 민족학교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저소득층과 이민자. 아시아계, 태평양 도서국 출신, 남가주 유색 인종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헌신하고 있습니다. 여성과 이민자, 유색 인종이 사회적으로 우선시되고 지지를 받을 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합니다. 그들의 삶 뿐만 아니라 커뮤니티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 일은 때때로 거칠고 고단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하고 서로 도울 때 우리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민족학교는 ‘국제 여성의 달’인 3월 뿐만 아니라, 이를 위해 매일 일하고 있습니다. 모든 여성과 이민자, 유색 인종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도록 힘써 싸우겠습니다.

우리의 여정에 함께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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